2025년 9월 15일 월요일

나의 수준에 맞는 믿음을 보이겠지

예수께서 나의 삶의 길을 아십니다.
기쁠 때에 감사하고 즐거울 때에 감사하네.

나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주님
나는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행동하는데
때로운 비겁해 보이기도 한 방법도 사용하지
주님은 주님의 뜻을 따라 나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해 나의 삶에 함께 하신다
나의 행함과 주님의 행함이라는 것은 각자 행해지는 것일 수 있겠으나
이 두 가지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의 소원을 이룬다.

나는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행하는 방법인지 잘 모른다. 
나는 나의 소원을 빌고 나의 계획과 나의 행함이 있을 뿐이다.
어떤이는 믿음이 바라는 것의 실상이니 믿음으로 하나님이 어찌해 주심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그 정도의 통찰력이라면 나는 아마 세계를 지배할 능력자일 지도 모른다. 
혹시 10번째 하나님 수준의 지혜나 지식은 아닐까?  
물론 하나님은  오직 한 분 삼위일체의 하나님 뿐이시다.

지나고 보면 나는 진행되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 했고 
하나님이 계획을 가지고 행하시며 나의 소원을 이루심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간증한다.

나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주님
나는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행동하는데
때로운 믿음이나 멋이 있어 보이고 때로는 추해 보이기도 한 방법도 사용하지
주님은 주님의 뜻을 따라 나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해 나의 삶에 함께 하신다
나의 행함과 주님의 행함이라는 것은 각자 행해지는 것일 수 있겠으나
이 두 가지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결국 하나의 소원을 이룬다.

우리의 삶에는 어려움이 많다. 
생각보다 길어지고 힘든 시기가 있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평안과 불안, 약감의 쉼과 고된 일과가 나의 삶이 되고 있다.

나는 나의 수준에 맞는 믿음을 보이겠지
고통 가운데 믿음으로 평안을 외치는 사람도 있겠지
나는 아프면 아프다고 말 할 것이다.
불안하면 불안하다고 말 할 것이다.

힘든데 힘들다고 말을  못하고, 믿음으로 평안을 외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인가? 
아니면 간사스러운 현실 도피인가? 
우리는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를 받기 위해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하지 않고 나의 주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하지는 않는가?

물론 믿음을 지키기 위해 믿음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평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그러한가?
누가 당신이 예수의 이름을 지키고 믿음으로 평안하다 하지 않으면 칼로 목을 벤다고 위협하는가?

나의 피곤하고 지친 몸을 가지고 주니께 나아가자
그리고 말하자 지치고 피곤하다 힘들다고 말하자. 이게 사실이니 사실을 말하자
거짓된 믿음이 주는 힘을 가지려 노력하지 말자.

상하고 아픈 마음을 가진 사람도 주님께 나아가자
그리고 말하자 불안하고 우울하고 슬프고 화난다고 말하자. 이게 사실이니 사실을 말하자
주님 안에서 평안하려고 노력하지 말자. 

주께서 나의 의가 되어 주시리라.
그는 신자를 동정하며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다
그는 신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주님이 보이시는 동정과 자비를 위지하여 담대하게 나아가자

나의 살아 가는길 주께서 아신다.
그가 함께 하신다.
그는 자신의 뜻을 따라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행하신다.

나의 행함과 주님의 행함이라는 것은 
각각 두 개의 인격체가가 각자 행하는 것일 수 있겠으나
이 두 가지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가 되고 두 개인 듯한 하나의 소원을 이룬다.

주님의
주님에 의한 
주님을 위한
나의 계획되고 행하는 삶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나는
포도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하늘에서 주시는
자비와 은혜를 기대하고 바라봅니다.
피곤하고 지칠 수록  고통과 애통함이 더해집니다.
이렇게 무너지지는 않겠지 생각 하지만 내일이 암담하기도 합니다.
구원의 때를 기다립니다.


히브리서 4장 15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2025년 9월 4일 목요일

게임중독 아들을 대하는 불교신문의 답변

부처는 불교의 상상의 산물이고 불상은 금색 입힌 조각일 것이다.  그런데 신을 안다고 하는 신자인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글이 있어  카피하여 가져왔다.  

우리는 한 사람을 바라볼 때 무엇을 바라보고 판단하는가? 이해와 용서와 도움인가? 아니면 행위에 대한 판단과 정죄와 율법의 제시인가?  신자인 나는 무엇이 결여된 것인가?


에수께서는 친히 인간의 몸을 가지고 인간의 연약함을 체험하셨다. 이로서 예수께서 신자를 이해하고 바비를 베풀도 도와 준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4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늘에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 고백을 굳게 지킵시다. 15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우리는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와 어떤 방법(새로운 율법)을 제시하면서  도움을 받기 위해 기도하라고 조언하지는 않는가?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주기 위하여 정의로운 삶을 강조하고 이야기 하면 어떨까?. 사랑과 자비가 결여된 정의와 신념은 위험하다.. 어쩌면 그것은 악이다. 특히나 신자는 왜 이렇게 사랑과 자비가 결여된 정의의 잣대로 바라볼까? 왜냐하면 너무 많은 경우 정죄하고 회개하고 옳바른 삶을 사는일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자는 너무 많은 경우 정의를 가지고 어두움을 만든다. 많은 경우 비판하지만 옳은 삶을 살도록 실질적으로 도와주지는 않은다. 물론 똑바로 살라고 권면하기는 하겠지만.. 그것 뿐...  가령 마음이 아픈자에게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평안하다고 믿음 믿음 믿음, 기도 기도 기도를 강조할 수 있으나 그러나.......차라리 의사 만나서 약을 처방 받아서 나을 수 있다. 거룩해 보이는 권면보다 약물 처방이 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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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 게임에 미쳐 사는 애 때문에 힘들어요

“고1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요즘 게임중독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저희 아들이 그럴 줄은 몰랐어요. 너무 속상합니다. 얘가 중학교 때 어느 날부터인가 피씨방을 다니기 시작하길래 그런 데 꼭 가야 되냐고 했더니, 거기 가야만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고 해서 그냥 이해하는 마음으로 놔두었습니다. 애가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니고, 요즘 애들 문화인가보다 하고 말이죠. 근데 중학교 내내 피씨방에서 사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점차 집에서도 새벽까지 게임을 붙잡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이해해보려고 했어요. 중학교 때까지만 그렇게 놀고 고등학교 올라가면 정신차리겠지 하는 마음에요. 근데 웬걸요. 고등학교에 올라가더니 상황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이번달 제 카드명세서를 봤는데 100만원 정도가 무슨 결제요금으로 찍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깜짝 놀라 애한테 물어보니 자기가 게임에서 뭐 사는 데 카드로 결제를 했다고 그러는 거예요. 정말 앞이 깜깜해지고 지금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남편에게 말해 애를 호되게 혼냈는데, 애가 울면서 하는 말이 자기가 큰 돈을 마음대로 쓴 건 잘못한 거지만, 친구들한테 잘 보이려면 정말 그 아이템이 없으면 안 되는 거라고, 엄마 아빠가 그런 거 하나 못해주냐고 도리어 역정을 내는 거 있죠. 정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애가 게임에 미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A: 안녕하세요.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한다고 보이는 아이 때문에 많이 속상하시군요. 특히 게임 때문에 엄마 카드까지 마음대로 갖다 쓰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보이니 정말 많이 걱정되시겠어요. 아이가 게임중독에 빠졌다고 말씀하시니 저희가 먼저 중독이 무엇인가에 대해 함께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중독은 대체적으로 모종의 심리적 이득을 얻기 위해 특정한 도구를 습관적으로 남용하는 행위로서 정의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중독행위 자체가 아니라, 중독에 빠진 이가 과연 어떠한 심리적 이득을 얻고자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경우 아이가 직접 얘기했듯이, 아이는 게임을 통해 친구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얻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어떤 이득들이 있는 까닭이겠죠.


  친밀한 관계를 얻고자 게임에만 몰입한다는 것은, 역으로 얘기하면 게임 외에는 친밀한 관계를 그 어디에서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있어서 게임이라는 도구는 자신이 바라는 친밀한 관계를 제공할 대상과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것입니다.


  게임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으로 보이는 아이의 모습은, 바로 그만큼이나 친밀한 관계를 필요로 하는 절실한 모습인 것이죠.


  저희가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게임 내에서 통용되는 비싼 아이템을 구매했습니다. 그럼으로써 게임 내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고자 한 것이죠. 즉 아이는 최소 자신이 그 역시도 큰 돈이라고 지각하는 100만 원만큼의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는 100만 원을 게임 내 자신에게 투자함으로써, 자신이 적어도 100만 원만큼은 가치있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많은 액수의 돈이 귀하다고 느끼는 만큼, 아이 자신이 스스로 그렇게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질문자님의 아이는 게임에 미쳐 100만 원을 쓴 바보나 중독자가 아니라, 100만 원을 쓰지 않고는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좀처럼 실감할 수 없었던 슬픈 소년입니다. 그 소년은 친밀한 관계 속에서 자신이 참으로 귀하다는 사실을 얼마나 간절히 확인하고 싶었을까요. 또 그런 것들을 쉽사리 얻지 못해 얼마나 쓸쓸한 마음으로 작은 모니터 속으로 들어가야 했을까요. 질문자님의 관심이 향해야 할 곳은 질문자님의 게임중독자 아이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내가 귀한 것을 누가 좀 알아달라고 목놓아 외치고 있는 바로 그 슬픈 소년일 것입니다. 그 소년의 목소리를 한번 들어보세요. 반드시 듣게 되실 거예요. 그 소년은 우리 모두에게 속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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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겟츠비 문장을 읽어보

In my younger and more vulnerable years my father gave me some advice that I've been turning over in my mind ever since.

"Whenever you feel like criticizing any one," he told me, "just remember that all the people in this world haven't had the advantages that you've had."


제가 더 젊고 연약했던 시절, 아버지는 제게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그 조언은 지금도 제 마음속에 맴돌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을 때마다," 아버지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누렸던 것과 같은 이점을 누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2025년 8월 20일 수요일

나는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나..

우리의 삶의 여정에 평화와 즐거움이 있으며
우리의 삶의 여정에 고통과 시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시점에서 삶의 여정을 뒤돌아 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게 됩니다.

나는 나대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며 계획하고 실행합니다. 그것은 때로 정당한 방법이었고 떄로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나의 삶에 함께 하면서 그의 뜻대로 행하십니다.  이것은 나와 하나님이 더불어 공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우리는 복된 삶을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는 꿈을 꾸고 바라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계획하고 실행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따라 꿈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복 주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야곱은 나름대로 팥죽으로 에서에게 사기도 치고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이삭을 속이기도 합니다. 야곱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산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뜻으로따라 복을 주셨습니다. 나의 행한 것과 하나님의 행함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다윗을 살기 위해 미친척 하였습니다.  살기위하여 사울을 피해 적국의 가드왕에게 갔으나 거기서도 목숨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는 침도 흘리며 미친척하여 쫓겨 목숨을 지켰습니다. 시편34에서 다윗은 자신을 살려주신 하나을 찬양합니다.

다윗은 살기 위해 블레셋으로 피하였는데, 이 때문에 다윗은 블레셋과 이스라엘간의 전쟁에서 블레셋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될 사람에게 좋지 않은 기록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의 지휘관들을 통하여 다윗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처럼 나의 행한 것과 하나님의 행함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나의 삶에서 간절히 원하고 기도했으며 그러나 적절하지 않은 방법을 썼으나 아무래도 그런 방법으로는 게는 이루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책망과 징벌, 회개 그리소 소원 성취를 이루시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고,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대로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소원을 이루어 가는 과정은 예상하지도 못하게 편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것을 빼앗기게 되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한것이 없고 빼앗길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단지 기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중에 어떤이를 통하여 하나님이 막아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그이는 너는 뒷배가 누가 있느냐 대단하다라고 말했으나, 나는 나를 도와준 사람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나는 소원을 꿈 꾸었고 나름대로 이루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많은 경우 정당하기도 하고 뭔가 부당하거나 찝찝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대로 나의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생각지도 못했고 흔한 일도 아니고 예상 불가능했던 것이라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현재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일 일을 어떻게 알 수가 없습니다.  당당하게 평안하다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더불어 행하심을 믿습니다. 어떻게든지 나는 시련을 극복하고 평안을 얻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자비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 그는 나와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나의 뜻이나 행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진 약속입니다. 그래서 안전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하는 것을 잘 알고 믿을 정도라면 아마도 나는 지금쯤 세상을 지배할 권력가나 재력가일 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시민입니다. 

내가 말 할 수 있는 것은 현재로서는 

나는 하나님께서 자비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 그는 내 삶의 과거로부터 나와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나의 뜻이나 행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진 약속입니다. 그래서 안전합니다. 

바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 


2025년 8월 18일 월요일

함께라면

피프티피프티 의 Starry Night이라는 노래가 있다. 듣기가 좋아 즐겨 듣는 노래이다. 가사를 찾아의미를 알아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찬송가보다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인간의 마음을 더 잘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중 한 부분만 보면 다음이 있다.


아득한 어둠도 무섭지 않은 걸 네 곁에 있으니까

어둠이 짙어질 땐 우린 서로를 느껴

따스히 빛나 Always

I’ll make the stars align

서로를 잇는 한 쌍의 별 함께라면 난 두렵지 않아


I’ll make you, make you feel alright

꺼뜨리지 않을 Shining light 우리가 지켜낸 빛 

여기 반짝이고 있어 Yeah, we’ll make a starry night


가사 중에서 어둠도 무섭지 않은 것은 함께 하기 때문이고 서로를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는 표현이 있다. 마음으로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부럽기도 하고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예배의 시작에서 찬송가 소리는 말은 맞는 말이고 훌륭해 보이는데 나에게는 공허하고 따라 부를 수가 없었다. 함께 부르는 것은 나의 간증이 아니라 기계적인 재생일 것 같았다.  하나님은 차라리 반항이 없는 기계같은 것을 만들어도 좋았으리라???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녹음기가 나를 칭찬하는 말을 24시간 스피커로  내보내면 나는 정말 기분이 좋은가? 인정받거나 존경받는 느낌이 들까? 한편으로 속으로는 다른 생각이며 간증이 있을 텐테 나를 찬양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가 간사를 떤다고 의심해야 하지 않을까?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이나 김 정은을 눈물 흘리며 열렬히 환호하고 반기는 것을 TV에서 본적이 있다. 진심일까? 아닐 것 같은데.... 만일 진심인 사람도 있다면 쇠뇌된 사람은 아닌까? 또는 살기위한 적응과 반응(몸부림)은 아닐까? 하나님은 이런 찬양을 원하실까? 아닐 것 같다. 우리는 찬양 한답시고 간증이 아니라 그저 훌륭한 문구와 음악의 열렬한 팬이 되어 노래하는 것은 아닐까?


아득한 어둠도 무섭지 않은 걸 네 곁에 있으니까

어둠이 짙어질 땐 우린 서로를 느껴

서로를 잇는 한 쌍의 별 함께라면 난 두렵지 않아

만일 이런 찬송을 한다면, 거룩 거룩 가룩 우리와 함께하시며 돌보시는 주님을 찬양하세~~찬양하세 우리의 왕 우리와 함께 하시네~~ 보다 더 우리의 마음과 감성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돌보시는 주님을찬양합니다 보다 함께라면 난 두렵지 않아가 더 간증 같아 보인다.


설교시간 전까지만 해도 생각이 복잡했다. 몸도 마음도  힘들다는 생각, 어려움 가운데 버려 졌는가? 하나님이 고통 가운데로 몰아가시면 도와 달라는 기도는 무슨 소용인가? 무엇이라도 헛점이 보이면 딱 걸렸어 혼 나야겠는걸???? 하시는 하나님???

설교는 잘 듣고 이해했다... 몸도 좀 편해지고.... 


그리고 나의 삶을 뒤돌아 보았다.  내가 살아오는 인생의 여정게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수 많은 도전에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확신하는 것은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제 3자가 보기에는 일상을 살아 가는 것 같지만, 개인의 부끄러운 면이 많아 남에게 간증한 것도 별로 없어서 더 그러할 것이지만, 나의 소원을 들어 주신 분이다. 이상하게 나의 특별한 경험은 나의 약점이 많이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남에게 창피해서 말도 못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해서 바라고 믿었는데 도움 받았다는 간증은 쉬울 것 같은데.... 내가 기도하고 이런 짓거리도 했는데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 주신 것들, 나는 그냥 어떤 일들이 슬펐고 한 것이 없는데 그에 대한 내가 특별하다고 느낀 결과들.. 대학 졸업하면서 에바스화장품에 입사했다. 나는 신앙생활도 하고 회사 생활도 하는 곳이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입사해 보니 기족교 정신을 강조하는 회사였다. 나는 급여를 추가로 받으면서 에바스찬양단 활동을 했다. 이런 간증은 자세하기 말하기가 쉽다. 군생활과 관현하여, 결혼과 관련하여 여러 간증이 있으나 내 허접한 사생활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딸이 어려운 사춘기를 겪을 때 샌디에고로 여러번 드라이브 하면서 UCSD 지나가게 되었다. 나는 딸이 UCSD에 입학하여 마음 고생 덜하고 편히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겟다는 소망을 품었다. 또한 졸업할 때에는 독립해서 교사가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었다. 그렇게 기도로 말한 소원이 이루어 졌다. 아들은 UCLA를 지나면서 여기에 입학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열심히 했는데 따 보다는 좋은 열매를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좌절보다는 노력하면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경험을 하기를 바랬다.  둘 다 이게 될지는 몰랐다. 그렇게 소원이 이루어 졌다. 인턴에서 탈락한 이유는 나중에 알고 나는 아들에게 다시 그런 회사에 지원하라고 말했다. 나는 기도한다. 비록 이 경험이 아들을 변화 시킬수 없을 것 같지만... 나는 그가 알기를 바란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하나님이 제일 크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계속 다르다. 내가 슬퍼하여 하나님을 불렀을때 항상 해결이 되었기에, 이번에도 그러기를 은근히 바랬는데.... 아니다 이번은 정말 어려운 삶의 과정이다. 다윗이 말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나는 지금 푸른 초장에 눕지 못했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이 드는데 이것을 푸른 초장이라고 믿음으로 누린다고 한다는 것은 받아 들일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다가오는 천국은 여전히 고통이 있어도 푸른초장이라고 믿음으로 평안을 누려야 하는 세상이라는 말인가? 그래서는 우리가 천국이 아니다.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느낀다. 완전히 쉬는 것은 아니고 쉴 만한 쉼터가 제공되는 그러나 여전히 험한 사막같은 곳이다. 


부정적으로 보면 버림받았나?  징벌인가? 하나님은 살아계신가?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또 긍정적으로 보면 이제 나는 이정도의 고난을 감당할 수준이 된 것인가? 하나님은 이 정도까지는 한번 해 볼만하다고 생각하신 것인가? 별 생각이 다 들겠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훗날 되돌아 보면 모를 일이다.


삶에서 겪는 어려움은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대개는 생노병사는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혹시 생노병사는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있었을 것이다. 


되돌아 보면 내가 살아오는 인생의 여정게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수 많은 도전에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확신하는 것은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는 잘 몰라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것은 알겠다.


나는 알 수가 없다. 내가 아는 것은 지금 힘든 삶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길고 생각보다 고단한 환경이다. 나는 알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지금 이 순간 나의 삶에 함께 계시고 소원을 들어 주셨고 내 편에서 손을 들어 주었던 하나님을 되돌아 본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은 쉼을 얻었다. 부디 잘되기를  바라지만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 없지 않은가....  다시 한번 노래가사를 생각해 본다. 마음에 근심이나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의지할 곳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다. 또 어찌 아는가... 일 이들이  잘 풀리며 평안만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 


아득한 어둠도 무섭지 않은 걸 네 곁에 있으니까

어둠이 짙어질 땐 우린 서로를 느껴

서로를 잇는 한 쌍의 별 함께라면 난 두렵지 않아




2025년 6월 16일 월요일

사랑과 자비가 결여된 정의와 신념은 위험하다.. 어쩌면 그것은 악이다 1

사랑과 자비가 결여된 정의와 신념은 위험하다.. 어쩌면 그것은 악이다정의와 신념은 위험하다.. 어쩌면 그것은 악이다

특히나 신자는 왜 이렇게 사랑과 자비가 결여된 정의의 잣대로 바라볼까? 왜냐하면 너무 많은 경우 정죄하고 회개하는 일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자는 너무 많은 경우 정의를 가지고 어두움을 만든다. 비판하지만 옳은 삶을 살도록 도와주지는 않은다. 물론 똑바로 살라고 권면하기는 하겠지만.. 그것 뿐...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주기 위하여 정의로운 삶을 강조하고 이야기 하면 어떨까?

인생의 여정에서 시련이나 고난의 이유

하나님 입장에서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만 ..

아브라함을 보니 아들을 약속 받았으나 정말 오랜 시간이 흘러 상속자 아들을 볼 수 있었다.
야곱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많은 고생을 했다.  나그네의 삶을 살며 부자도 되었지만 이집트 왕 바로 앞에서 그의 간증

창세기 47장
7   요셉은 자기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와서, 바로를 만나게 하였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하고 나니,
8   바로가 야곱에게 말하였다. "어른께서는 연세가 어떻게 되시오?"
9   야곱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 년 하고도 삼십 년입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요셉은 아직 어린 나이에 형제들의 버림을 받아 노예로 팔여가고, 모함을 받아 지하의 감옥에서 일하며 지내게 된다.

모세는 40년간 왕자로서의 호화로운 생활을 한 후 40년의 광야에서 양을 치며 목자의 삶을 살다가 40년간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이끄는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

다윗은 왕이 되리라는 약속을 받기는 했으나 오랜 세월 쫓기는 삶을 살다가 왕이 되기는 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하여 죽음의 위협과 많은 고난을 받았다. 그 고난에는 자기 자녀들이 관련되어 더 마음이 아프다.  다윗의 노래는 그저 삶을 평안 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노래가 아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른다던 다윗의 간증은 수 많은 어렴움이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다윗의 노래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3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 다들 보면 가족을 떠나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
- 이런 저런 험한 꼴을 당하며 살았다. 물론 그 가운데에서 많은 기적같은 사건도 보았으리라...
- 고달픈 삶은 결코 짧지 않고 길었다.

이것은 신자의 삶인가?

하나님 입장에서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만 .. 신자라고 해도 사람은 이런 저런 어려움을 당하고 살 것이다. 왜 이런일이? 라는신자의 입방에서 본 의문에 대한 답이 있을까?  죄 떄문에? 복음을 위하여, 신앙의 연단을 위하여? 분명하게 답을 얻을 수는 있나>  또한 그렇게 얻은 답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사실일까?



2025년 6월 13일 금요일

맹목적임, 간사함 혹은 믿음?

 

진리는 아닐지라도 다음을 한 번 생가해 보고 시작하자

- 사랑과 자비가 결여된 정의와 신념은 위험하다.. 어쩌면 그것은 악이다

- 위대한 갯츠비의 한 문장

내가 더 어리고 마음의 상처를 입기 쉬웠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해주셨는데, 나는 그 말씀을 그 후 줄곧 마음 속에 뇌어 오고 있다. “네가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하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이런 걸 생각하거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네가 가졌었던 그런 유리한 처지에 있지 못했다는 걸 말이야.”


어려움을 당하는 와중에 우리는 기도도 하고 많은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기간이 길어지거나 어려움의 강도가 클 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연속적으로 발생할 때, 간절히 기도하고 응답을 바라지만 우리는 왜 이런 버거운 일이 계속 생가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기도하고 응답을 받고 싶겠지만 어찌해야 하나..... 흔히 들고 배운 믿음의 기도는 아닌 듯 하니 말이다.  이래서 응답은 받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본성이나 생각이나 목적이나 이해하기 어려워..... 믿음의 기도라고 듣고 배운 모습을 달성하여 응답받기 위해 맹목적인 또는 간사함을 보여야 하나? 아니면 그것이 믿음인가? 어차피 인간이 신의 하시는 뜻과 일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어려운 시기를 벗어나 영안을 누리고 싶다.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 자비를 페풀어 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여러가지인데, 왜 이런 일이 생기지?..  왜 이렇게 가혹하지?.. 죄의 문제인가?.. 신앙의 단련의 문제인가? 기도의 응답은 있기는 한 것인가?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  딱히 신에게 도전하고자 하는 질문이 아니다. 그냥 이해가 안돼.. 구원을 바라는 기도 하면서 이런 내용도 같이 기도하니... 이래서야 응답을 받겠나? 신에게 도전하고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응답 받고 싶어 나름 생각하고 그런 과정인게, 나의 지능과 생각으로는 그정도 생각밖에 안들어. 모르겠는데 어쩌라고...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기 위하여 인격적인 존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그런데 무조건 하나님은 정의롭고 자비하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면 너무 맹목적인 것 아닌까? 도대체 돌맹이나 쇳덩어리와 뭐가 다른가? 왜 의심하냐고 비판한다면, 그냥 보이고 느끼는 환경이 그래 보여서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 뿐인데, 무조건 그런 불신앙적인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냥 생각없는 돌맹이나 물같은 것을 창조하고 은혜를 베풀면 좋지 않았을까? 어차피 생각이나 의견 따위 필요없으니 말이다  흙 같은 것은 최소한 자신의 생각을 속이지는 않으니, 반항이 없으니 더 억지 아닌 자연 스러움이 있지 않나 싶다. 나 같은 인간의 생각이 옳다는 주장이 아니다. 


이해도 안되면서 무조건 하나님이 옳고 자비롭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의 불신앙을 지적하는 기도는 좀 간사하지 않나요? 이해가 안되는 나의 생각이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 수준이 신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되지 않는다.  만일 믿음이라는 이름아래 다 이해 된다고 하는 것은 너무 억지 아닌가? 도대체 뭘 믿는다는 말인가? 이해도 못하면서 말이다. 혹은 신은 믿음만 있으면 내가 다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가? 당신의 착각은 아니까? 당신이 믿음으로 새로운 신을 창조한다는 생각은 안드시나요?


어떤이는 일이 다쳤을 때 믿음과 평안을 누리고 응답이 왔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 모든 것에 능하시며 모든 것을 아시며 우주를 만드신 야훼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 독생자 예수를 믿으니 그는 성경으로 잉태되셔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장사된지 3일만에 다시 살아 나셔서 하늘에 오르신 후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지구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이 계심을 믿습니다.

- 자비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평안의 삶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 나는 당신의 뜻이나 생각을 잘 모르겠습니다. 

- 나는 이어려운 상황이 힘이 드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고 좀 많이 당황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난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해가 안됩니다. 그리고 인간이 신의 무엇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 나의 이해 부족이나 무지함이 하나님의 구원에 장애물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맹목적이거나 간사하게 기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거짓일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 옳다는 주장도 아니고 신에게 대항하고자 함도 아닙니다.

- 나는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나는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봅니다. 

- 자비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평안의 삶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나의 수준에 맞는 믿음을 보이겠지

예수께서 나의 삶의 길을 아십니다. 기쁠 때에 감사하고 즐거울 때에 감사하네. 나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주님 나는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행동하는데 때로운 비겁해 보이기도 한 방법도 사용하지 주님은 주님의 뜻을 따라 나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