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6일 월요일

사랑과 자비가 결여된 정의와 신념은 위험하다.. 어쩌면 그것은 악이다 1

사랑과 자비가 결여된 정의와 신념은 위험하다.. 어쩌면 그것은 악이다정의와 신념은 위험하다.. 어쩌면 그것은 악이다

특히나 신자는 왜 이렇게 사랑과 자비가 결여된 정의의 잣대로 바라볼까? 왜냐하면 너무 많은 경우 정죄하고 회개하는 일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자는 너무 많은 경우 정의를 가지고 어두움을 만든다. 비판하지만 옳은 삶을 살도록 도와주지는 않은다. 물론 똑바로 살라고 권면하기는 하겠지만.. 그것 뿐...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주기 위하여 정의로운 삶을 강조하고 이야기 하면 어떨까?

인생의 여정에서 시련이나 고난의 이유

하나님 입장에서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만 ..

아브라함을 보니 아들을 약속 받았으나 정말 오랜 시간이 흘러 상속자 아들을 볼 수 있었다.
야곱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많은 고생을 했다.  나그네의 삶을 살며 부자도 되었지만 이집트 왕 바로 앞에서 그의 간증

창세기 47장
7   요셉은 자기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와서, 바로를 만나게 하였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하고 나니,
8   바로가 야곱에게 말하였다. "어른께서는 연세가 어떻게 되시오?"
9   야곱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 년 하고도 삼십 년입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요셉은 아직 어린 나이에 형제들의 버림을 받아 노예로 팔여가고, 모함을 받아 지하의 감옥에서 일하며 지내게 된다.

모세는 40년간 왕자로서의 호화로운 생활을 한 후 40년의 광야에서 양을 치며 목자의 삶을 살다가 40년간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이끄는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

다윗은 왕이 되리라는 약속을 받기는 했으나 오랜 세월 쫓기는 삶을 살다가 왕이 되기는 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하여 죽음의 위협과 많은 고난을 받았다. 그 고난에는 자기 자녀들이 관련되어 더 마음이 아프다.  다윗의 노래는 그저 삶을 평안 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노래가 아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른다던 다윗의 간증은 수 많은 어렴움이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다윗의 노래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3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 다들 보면 가족을 떠나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
- 이런 저런 험한 꼴을 당하며 살았다. 물론 그 가운데에서 많은 기적같은 사건도 보았으리라...
- 고달픈 삶은 결코 짧지 않고 길었다.

이것은 신자의 삶인가?

하나님 입장에서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만 .. 신자라고 해도 사람은 이런 저런 어려움을 당하고 살 것이다. 왜 이런일이? 라는신자의 입방에서 본 의문에 대한 답이 있을까?  죄 떄문에? 복음을 위하여, 신앙의 연단을 위하여? 분명하게 답을 얻을 수는 있나>  또한 그렇게 얻은 답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사실일까?



2025년 6월 13일 금요일

맹목적임, 간사함 혹은 믿음?

 

진리는 아닐지라도 다음을 한 번 생가해 보고 시작하자

- 사랑과 자비가 결여된 정의와 신념은 위험하다.. 어쩌면 그것은 악이다

- 위대한 갯츠비의 한 문장

내가 더 어리고 마음의 상처를 입기 쉬웠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해주셨는데, 나는 그 말씀을 그 후 줄곧 마음 속에 뇌어 오고 있다. “네가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하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이런 걸 생각하거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네가 가졌었던 그런 유리한 처지에 있지 못했다는 걸 말이야.”


어려움을 당하는 와중에 우리는 기도도 하고 많은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기간이 길어지거나 어려움의 강도가 클 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연속적으로 발생할 때, 간절히 기도하고 응답을 바라지만 우리는 왜 이런 버거운 일이 계속 생가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기도하고 응답을 받고 싶겠지만 어찌해야 하나..... 흔히 들고 배운 믿음의 기도는 아닌 듯 하니 말이다.  이래서 응답은 받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본성이나 생각이나 목적이나 이해하기 어려워..... 믿음의 기도라고 듣고 배운 모습을 달성하여 응답받기 위해 맹목적인 또는 간사함을 보여야 하나? 아니면 그것이 믿음인가? 어차피 인간이 신의 하시는 뜻과 일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어려운 시기를 벗어나 영안을 누리고 싶다.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 자비를 페풀어 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여러가지인데, 왜 이런 일이 생기지?..  왜 이렇게 가혹하지?.. 죄의 문제인가?.. 신앙의 단련의 문제인가? 기도의 응답은 있기는 한 것인가?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  딱히 신에게 도전하고자 하는 질문이 아니다. 그냥 이해가 안돼.. 구원을 바라는 기도 하면서 이런 내용도 같이 기도하니... 이래서야 응답을 받겠나? 신에게 도전하고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응답 받고 싶어 나름 생각하고 그런 과정인게, 나의 지능과 생각으로는 그정도 생각밖에 안들어. 모르겠는데 어쩌라고...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기 위하여 인격적인 존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그런데 무조건 하나님은 정의롭고 자비하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면 너무 맹목적인 것 아닌까? 도대체 돌맹이나 쇳덩어리와 뭐가 다른가? 왜 의심하냐고 비판한다면, 그냥 보이고 느끼는 환경이 그래 보여서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 뿐인데, 무조건 그런 불신앙적인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냥 생각없는 돌맹이나 물같은 것을 창조하고 은혜를 베풀면 좋지 않았을까? 어차피 생각이나 의견 따위 필요없으니 말이다  흙 같은 것은 최소한 자신의 생각을 속이지는 않으니, 반항이 없으니 더 억지 아닌 자연 스러움이 있지 않나 싶다. 나 같은 인간의 생각이 옳다는 주장이 아니다. 


이해도 안되면서 무조건 하나님이 옳고 자비롭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의 불신앙을 지적하는 기도는 좀 간사하지 않나요? 이해가 안되는 나의 생각이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 수준이 신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되지 않는다.  만일 믿음이라는 이름아래 다 이해 된다고 하는 것은 너무 억지 아닌가? 도대체 뭘 믿는다는 말인가? 이해도 못하면서 말이다. 혹은 신은 믿음만 있으면 내가 다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가? 당신의 착각은 아니까? 당신이 믿음으로 새로운 신을 창조한다는 생각은 안드시나요?


어떤이는 일이 다쳤을 때 믿음과 평안을 누리고 응답이 왔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 모든 것에 능하시며 모든 것을 아시며 우주를 만드신 야훼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 독생자 예수를 믿으니 그는 성경으로 잉태되셔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장사된지 3일만에 다시 살아 나셔서 하늘에 오르신 후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지구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이 계심을 믿습니다.

- 자비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평안의 삶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 나는 당신의 뜻이나 생각을 잘 모르겠습니다. 

- 나는 이어려운 상황이 힘이 드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고 좀 많이 당황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난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해가 안됩니다. 그리고 인간이 신의 무엇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 나의 이해 부족이나 무지함이 하나님의 구원에 장애물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맹목적이거나 간사하게 기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거짓일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 옳다는 주장도 아니고 신에게 대항하고자 함도 아닙니다.

- 나는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나는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봅니다. 

- 자비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평안의 삶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그리스 어의 έλεος은(는) 무슨 뜻인가요?

 

https://nghiatu.com/ko/geuriseu-eo-yi-eleos-eun-neun-museun-ddeusingayo/el-%CE%AD%CE%BB%CE%B5%CE%BF%CF%82

그리스 어의 έλεος은(는) 무슨 뜻인가요?

그리스 어에서 έλεος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문서에서는 전체 의미, 발음과 함께 이중 언어 예제 및 그리스 어에서 έλεος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을 설명합니다.


그리스 어의 έλεος라는 단어는 이런, 저런, 아이고, 자비, 자비, 관용, 아량, 항복!, 젠장, 제기랄, 이게 무슨 일이야!, 제발 좀!, 자비를 베풀다를 의미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발음 듣기

단어 έλεος의 의미

이런, 저런, 아이고

(미국, 속어: 놀람/낙심의 표현)


(감탄사: 화자의 감동, 부름, 놀람, 응답 등을 나타냅니다. '아이고, 글쎄요, 여보세요' 등이 있습니다.)

자비

ουσιαστικό ουδέτερο


(명사: 사람 및 사물의 이름과 다른 말에 의존하는 의존 명사가 있습니다. '하늘, 스티브 잡스, 밥 먹는 데, 안타까울따름' 등이 있습니다.)

Ο βασιλιάς προσέφερε έλεος στον στασιάζοντα στρατό αν παραδίνονταν.

왕은 반란군에게 항복하면 자비를 베풀겠다고 했다.

자비, 관용, 아량

ουσιαστικό ουδέτερο


(명사: 사람 및 사물의 이름과 다른 말에 의존하는 의존 명사가 있습니다. '하늘, 스티브 잡스, 밥 먹는 데, 안타까울따름' 등이 있습니다.)

항복!


젠장, 제기랄

(비방어)


(감탄사: 화자의 감동, 부름, 놀람, 응답 등을 나타냅니다. '아이고, 글쎄요, 여보세요' 등이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야!

(αγανάκτηση) (화가 나거나 초조할 때)


제발 좀!

επιφώνημα


자비를 베풀다

나의 수준에 맞는 믿음을 보이겠지

예수께서 나의 삶의 길을 아십니다. 기쁠 때에 감사하고 즐거울 때에 감사하네. 나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주님 나는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행동하는데 때로운 비겁해 보이기도 한 방법도 사용하지 주님은 주님의 뜻을 따라 나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