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2/2025 작성
나는 고민하고 궁금하다..... 무엇을 깨달은 것도 아니고
현대 교회의 신자들의 입장에서 복음서에 기록된 수 많은 병 고침의 기적은 전설의 고향인가?
다들 간증도 하고 기적같다고 주장하지만 솔직히 제 삼자가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때 복음서에서 읽었던 그런 기적이라 할 수 있을까? 불신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또는 그들이 이해하기 신비한 신자에게만 나타는 경이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수 십년간 간증을 들어오며 6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복음서에서 보던 그런 차별화된 기적을 체험한 사람을 알지 못하고 단 한명도 이름을 말 할 수가 없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 질문은 더 나아가 새로운 시험에 빠지게 한다. 만일 그런 병고침의 기적이 예수께서 메시아임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인식된다면....... 그래서 성경이 주어진 현대에는 그런 기적이 필요하지 않다면...
나는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께서 그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치료해 주신 것은 아닌가요? 그렇다면 "나는 불쌍히 여겨주고 치유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 주고 메시아로 인정 받아야 겠다 그러나 메시아로 인정 받은 후에는 너희 병든 인간을 치료할 필요가 없다"라는 말인가? 예수의 능력은 오직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고 불쌍한 사람을 도와줄 의향은 없다는 것인가?
이 사회에서 생각해 보자 큰 그룹을 소유하고 경영하는 어떤 부자가 있다고 해 보자. 그는 자신의 재력과 선함을 알리기 위해 두 달 동안 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주고 치료해주고 도와준 뒤 엄청난 재력을 가진 선한 사람으로 인정되었다. 그렇게 인정된 이후 그는 불쌍한 사람들의 수 십 년째 먹여주지도 않고 치료해 주지도 않았다. 이를 바라보는 우리는 그 재력가를 존경할 것인가? 아니면 돈 많은 위선자로 인정할 것인가?
다음의 성경 구절은 나의 의문에 답을 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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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0: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30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마태복음 6장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을 해서, 자기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28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32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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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하루 하루는 하나님과 관계 없이 그저 자연의 법칙을 따라 임의로 무작위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기쁜 일도 화나는 일도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하신 범위 안에서 일어날 것이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경우의 사건은 기적이라기보단 특별한 행운이나 예상못한 불운할 일 처럼 보여질 것 같다. 소경이 갑자기 눈을 뜬 것 같은 환상적인 기적은 아니지만 큰 금액의 복권이 당첨되는 개연성 있는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기에 특별한 사건으로 경험되어 지는 것은 아닌까?
살아가며 아픈 것도 낫는 것도 삶의 이런 저런 것이 주님의 보호와 관찰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은 굳이 환상같은 기적을 행할 사건으로 신자를 밀어 넣으실까? 만일 그저 삶의 과정에서 주어지는 즐거움이나 고통이라면 굳이 환상적인 기적이 아니라도 개연성 있는 그러나 신자 자신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다윗의 노래를 읽어보자.
제 23 편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3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내가 만일 필요할 때 모든 것을 알거나 깨닫는 다면 나는 나름 10번째 신이 될 자격이 있지는 않을까? 그러나 모르기에 사람일 것이다. 한 명의 사람인 내 수준에서 모든 것을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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