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8일 수요일

주의 구원과 도움을 바라보다.

사람마다 다르겠고 차이가 있겠지만 


사람이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사람이 강하면 얼마나 강합니가?


계속되는 어려움에  무엇을 어찌할바 모릅니다. 문제가 발생하고 또 발생하고 그러다 하나가 조금 해결되면 또 어려움이 발생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힘들거나 지치거나 고통스런 일들의 연속에서 의지할 곳도 딱히 없고 서러움이 큽니다.

딱히 능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한숨이 많이 나옵니다.

딱히 도움 받을 곳도 없어, 몸이 힘들때면 아프면 안되는데..... 걱정이 앞섭니다.


주님의 도움을 바랍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빕니다. 

구원하여 주시기를... 

내 생각처럼 하나님이 불완전하다면

 어려움이 있거나 이해 안되는 일이 발생하거나 계속되는 힘든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고민하고 생각한다.

- 하나님은 나의 삶을 다 안다고 하지만 행복한 삶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알면서 안도와 주시나? 100% 다는 신경쓰기는 어려운가?

- 완전하고 능력있는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이세상을 살아가는 나는 버림받는 것은 아닌가... 나와 상관 없는 것이 많은 듯...

- 자신의 유익을 위해 우리를 희생하시는 듯?????

- 아 징하다. 의지의 하나님은 줄기차게 어려움을 당하게 하시는 구만..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의 현명한 판단대로 하나님이 불완전하다면 자신의 유익을 위해 끊인업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면, 그게 우리 인간에게 좋은 일인가? 하나님을 비꼬고 낮게 평가하여 얻을 것은 무엇인가? 잠시 경멸하거나 대항하는 쾌감은 있을지 모르겠다. 징계받을 수도 있겠지.

우리의 현명한 판단대로 하나님이 불완전하다면 앞으로의 살아갈 세상, 천국 등은 희망이 넘치는 곳이 아니겠지..... 왜냐하면 언제 불완전한 행복이 깨지고 고통이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하나님을 불완전하게 낮게 평가하는 것은 정말 현명한 생각인가? 차라리 내가 무식한 것이 좋으리라. 내가 주님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 좋으리라.... 

그래서 생각인데,

공산주의 북한 김정은이 통지하는 세상이 아니라면, 하나님에 대한 불신도 무조건 거부하지 말고 생각하고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벌 받을 까 두려워 속 마음은 불신인데 억지로 찬송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억지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는 하는 것인가? 모르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아는 것에 한계가 있고 이해를 못 한다. 우리는 사람이지 신이 아니고 성경을 보면 천사보다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다가 올 천국이 정말 영원히 아름다운 곳이라면, 하나님이 완전한 사랑의 본체이시고 영원히 완전해야 함을 기억하자. 

우리의 현명하다는 생각은 정말 현명한가? 만일 당신이 판단력이 그리 좋다면 대충 10번째 하나님 정도라 해도 돼지 않을까? 하지난 우리 인간이 그렇게 대단한가? AI한테도 밀리는데 말이다. 

아는 만큼 알리라. 너무 많이 알려면 그 이전에 두뇌가 과부하가 걸려 미처 버리리라.


어려움과 고통이있을 때 좀 더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하나님이 어느정도에서는 무능하거나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은 아닌가? 항상 기쁘겠는가? 항상 슬프겠는가? 

하나님에 대한 불신도 무조건 거부하지 말고 생각하고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하니 문제이다. 생각을 조금 바꿔서도 생각해 보자. 굳이 힘들게 믿고 찬양한다고 노력하지 말고 어려움을 받아 들여라. 그냥 고통을 당하라. 이유가 있겠지. 이유는 나도 잘 몰라 왜? 사람이니까...  

속단하지 말고 생각도 해보고 성경도 살펴보고 등등.... 쉽게 결론 내려 하면 안돼요. 


그래도 주의 구원이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면 좋겠다. 


당신의 인도함을 받는 이 삶은 고단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얼마나 많은 기이한 경험도 했는가? 나의 부족함과 관련된 것이 많아서 남에게 말해 보지 못한 사건은 또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때로 고난은 긴 시간 나를 후려칩니다. 지금은 인생에서 대략 3번째 어려운 시련의 기간인듯... 아~~ 다들 몇 년은 고생하는 듯,  그러고 나면 또 긴 몇 년의 휴식이 주어지는 것 같고 그러고 보면 3번째 어려움의 시기가 막바지에 이르러야 하지 싶은데.. 환난이 인내를 만든다는 기록이 주관적으로 잘 이해가 됩니다.

주의 구원이 임하기를 빕니다. 도와주십시오.




2025년 5월 26일 월요일

복음서에 기록된 수 많은 병 고침의 기적은 전설의 고향인가?

05/12/2025 작성

나는 고민하고 궁금하다..... 무엇을 깨달은 것도 아니고



현대 교회의 신자들의 입장에서 복음서에 기록된 수 많은 병 고침의 기적은 전설의 고향인가?

다들 간증도 하고 기적같다고 주장하지만 솔직히 제 삼자가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때 복음서에서 읽었던 그런 기적이라 할 수 있을까? 불신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또는 그들이 이해하기 신비한 신자에게만 나타는 경이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수 십년간 간증을 들어오며 6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복음서에서 보던 그런 차별화된 기적을 체험한 사람을 알지 못하고 단 한명도 이름을 말 할 수가 없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 질문은 더 나아가 새로운 시험에 빠지게 한다.  만일 그런 병고침의 기적이  예수께서 메시아임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인식된다면....... 그래서 성경이 주어진  현대에는 그런 기적이 필요하지 않다면... 

나는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께서 그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치료해 주신 것은 아닌가요? 그렇다면 "나는 불쌍히 여겨주고 치유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 주고 메시아로 인정 받아야 겠다 그러나 메시아로 인정 받은 후에는 너희 병든 인간을 치료할 필요가 없다"라는 말인가? 예수의 능력은 오직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고 불쌍한 사람을 도와줄 의향은 없다는 것인가?   

이 사회에서 생각해 보자 큰 그룹을 소유하고 경영하는 어떤 부자가 있다고 해 보자. 그는 자신의 재력과 선함을 알리기 위해 두 달 동안 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주고 치료해주고 도와준 뒤 엄청난 재력을 가진 선한 사람으로 인정되었다. 그렇게 인정된 이후 그는 불쌍한 사람들의 수 십 년째 먹여주지도 않고 치료해 주지도 않았다. 이를 바라보는 우리는 그 재력가를 존경할 것인가? 아니면 돈 많은 위선자로 인정할 것인가?

다음의 성경 구절은 나의 의문에 답을 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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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0: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30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마태복음 6장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을 해서, 자기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28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32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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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하루 하루는 하나님과 관계 없이 그저 자연의 법칙을 따라 임의로 무작위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기쁜 일도 화나는 일도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하신 범위 안에서 일어날 것이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경우의 사건은 기적이라기보단 특별한 행운이나 예상못한 불운할 일 처럼 보여질 것 같다. 소경이 갑자기 눈을 뜬 것 같은 환상적인 기적은 아니지만 큰 금액의 복권이 당첨되는 개연성 있는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기에 특별한 사건으로 경험되어 지는 것은 아닌까? 

살아가며 아픈 것도 낫는 것도 삶의 이런 저런 것이 주님의 보호와 관찰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은 굳이 환상같은 기적을 행할 사건으로 신자를 밀어 넣으실까? 만일 그저 삶의 과정에서 주어지는 즐거움이나 고통이라면 굳이 환상적인 기적이 아니라도 개연성 있는 그러나 신자 자신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다윗의 노래를 읽어보자.


제 23 편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3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내가 만일 필요할 때 모든 것을 알거나 깨닫는 다면 나는 나름 10번째 신이 될 자격이 있지는 않을까? 그러나 모르기에 사람일 것이다. 한 명의 사람인 내 수준에서 모든 것을 이해할 것이다.



그는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고통 중에서... 여러 생각)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나중에 뒤돌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훗날 나의 생각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한낱 피조물의 하나인 사람이 이 순간 무엇을 감히 주장하겠는가? 만일 이 글을 누가 읽는다고 한들 무슨 가르침이라도 줄게 있겠는가? 없다. 


마태복음 6장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32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마태복음 10장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30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시편 22편

23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그를 찬양하여라. 야곱 자손아, 그에게 영광을 돌려라. 이스라엘 자손아, 그를 경외하여라.

24   그는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들을 외면하지도 않으신다.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응답하여 주신다.


시편 23편

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신자의 모든 삶을  자세하게 알고 계시며, 신자의 삶을 그저 자연의 원리에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삶의 여러 사건에 개입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존경하고 찬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과 중국을 보라 정말 시진핑이나 김정은이 존경받을 사람들인가? 만일 아니라면 그 나라 국민들은 왜 존경을 표현하는가? 처벌을 받을까 봐 무서워서 그럴 것이다.그들 밑에서 사는 것이 배고프고 자유가 없음을 알지만 경의를 표한다.  그런 김 정은이나 시진핑을 찬영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민주주의 국민들의 시선에서는 그 인간들이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고 억압하는 독재자일 뿐이다.  혹시 우리 신자 각자에게도 하나님도 그렇습니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데도 벌을 받을까 두려워 아무런 생각도 못하고 무조건 하나님이 정의로우니 찬양한다면, 그게 제대로된 존경일까요? 무서워서 간사를 떠는 것과 차이는 없는 것인가? 당당하게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나?

우리는 어찌하여 하나님의 공의나 권위와 능력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존경하는가?  그가 공의롭고 정의로와서??? 아닐 것 같은데.... 분명한 이유의 하나는 그가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소위 하나님의 정의에 따라 질병이나 고통을 받는다면.... 어떤이는 지옥에 간다면.... 왜 존경하고 감사해야 하는가? 그언 하나님의 정의가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저 나를 처벌할 무서운 존재이므로 그저 두렵고 떨림으로 살려 달라고 해 볼 수 밖에 없겠다. 

시22:24 그는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들을 외면하지도 않으신다.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응답하여 주신다.

그렇다, 우리는 그분이 피조물의 하나이며 연약한 인간에게 자비롭고 도와주시는 분임을 알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신자에게 성경을 통하여 알려 주시기를.. 하나님은 신자의 모든 삶을  자세하게 알고 계시며, 신자의 삶을 그저 자연의 원리에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삶의 여러 사건에 개입하여 도와 주신다고 한다. 그런데 왜 누구에게 삶은 그처럼 힘들고 고단한가... 일이 하나 해결되는 듯 해 보이면, 그래서 좀 마음이 평안할라치면 또 다른 힘든 일이 생기고... 오랫동안 같은 어려움이 반복되고 해결되는듯 하면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기고... 

어떤이는 말하기를 " 어려움이 있어도 나는 늘 평안해" 한다면 나는 묻겠다.  당신의 삶이 너무 편해서 어려움이 뭔지 몰라서 드렇게 말하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은 고통을 못 느끼는 병자는 아닌가요? 혹시 당신에게 하나님은 김 정은이나 시진핑 같은 존재라서 자신의 삶과 생각을 괜찮다고 합리화하고 세뇌 시키는 것은 아닌가요? 하나님에게 대항하기 싫거나 무서워서 신자는 힘들면 힘들다고 말도 못하나? 아파도 아프다고 말을 못하고 나는 늘 평안하다고 말해야 하나?

살다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곳을 통과하리라.. 아픔이 있고 부르짖게 하는 일을 당하기도 하겠지.....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보살펴 주심을 간증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고통받는, 앞 길이 답답한 사람들은 어떠한가..... 계속해서 근심할 일이 발생하는 것은 왜 인가?

가혹하다는 생각 들때 없는가? 뚝심있게 밀어 붙여서 잔인하다는 생각은 안드는가? 나는 늘 평안하다고 말하는 자들은 뭐라하겠나?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나중에 뒤돌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훗날 나의 생각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한낱 피조물의 하나인 사람이 이 순간 무엇을 감히 주장하겠는가? 만일 이 글을 누가 읽는다고 한들 무슨 가르침이라도 줄게 있겠는가? 없다. 


이거 지금 나에게 해당하기는 하는가?

시22:24 그는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들을 외면하지도 않으신다.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응답하여 주신다.


나의 수준에 맞는 믿음을 보이겠지

예수께서 나의 삶의 길을 아십니다. 기쁠 때에 감사하고 즐거울 때에 감사하네. 나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주님 나는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행동하는데 때로운 비겁해 보이기도 한 방법도 사용하지 주님은 주님의 뜻을 따라 나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