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5일 월요일

나의 수준에 맞는 믿음을 보이겠지

예수께서 나의 삶의 길을 아십니다.
기쁠 때에 감사하고 즐거울 때에 감사하네.

나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주님
나는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행동하는데
때로운 비겁해 보이기도 한 방법도 사용하지
주님은 주님의 뜻을 따라 나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해 나의 삶에 함께 하신다
나의 행함과 주님의 행함이라는 것은 각자 행해지는 것일 수 있겠으나
이 두 가지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의 소원을 이룬다.

나는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행하는 방법인지 잘 모른다. 
나는 나의 소원을 빌고 나의 계획과 나의 행함이 있을 뿐이다.
어떤이는 믿음이 바라는 것의 실상이니 믿음으로 하나님이 어찌해 주심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그 정도의 통찰력이라면 나는 아마 세계를 지배할 능력자일 지도 모른다. 
혹시 10번째 하나님 수준의 지혜나 지식은 아닐까?  
물론 하나님은  오직 한 분 삼위일체의 하나님 뿐이시다.

지나고 보면 나는 진행되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 했고 
하나님이 계획을 가지고 행하시며 나의 소원을 이루심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간증한다.

나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주님
나는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행동하는데
때로운 믿음이나 멋이 있어 보이고 때로는 추해 보이기도 한 방법도 사용하지
주님은 주님의 뜻을 따라 나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해 나의 삶에 함께 하신다
나의 행함과 주님의 행함이라는 것은 각자 행해지는 것일 수 있겠으나
이 두 가지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결국 하나의 소원을 이룬다.

우리의 삶에는 어려움이 많다. 
생각보다 길어지고 힘든 시기가 있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평안과 불안, 약감의 쉼과 고된 일과가 나의 삶이 되고 있다.

나는 나의 수준에 맞는 믿음을 보이겠지
고통 가운데 믿음으로 평안을 외치는 사람도 있겠지
나는 아프면 아프다고 말 할 것이다.
불안하면 불안하다고 말 할 것이다.

힘든데 힘들다고 말을  못하고, 믿음으로 평안을 외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인가? 
아니면 간사스러운 현실 도피인가? 
우리는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를 받기 위해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하지 않고 나의 주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하지는 않는가?

물론 믿음을 지키기 위해 믿음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평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그러한가?
누가 당신이 예수의 이름을 지키고 믿음으로 평안하다 하지 않으면 칼로 목을 벤다고 위협하는가?

나의 피곤하고 지친 몸을 가지고 주니께 나아가자
그리고 말하자 지치고 피곤하다 힘들다고 말하자. 이게 사실이니 사실을 말하자
거짓된 믿음이 주는 힘을 가지려 노력하지 말자.

상하고 아픈 마음을 가진 사람도 주님께 나아가자
그리고 말하자 불안하고 우울하고 슬프고 화난다고 말하자. 이게 사실이니 사실을 말하자
주님 안에서 평안하려고 노력하지 말자. 

주께서 나의 의가 되어 주시리라.
그는 신자를 동정하며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다
그는 신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주님이 보이시는 동정과 자비를 위지하여 담대하게 나아가자

나의 살아 가는길 주께서 아신다.
그가 함께 하신다.
그는 자신의 뜻을 따라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행하신다.

나의 행함과 주님의 행함이라는 것은 
각각 두 개의 인격체가가 각자 행하는 것일 수 있겠으나
이 두 가지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가 되고 두 개인 듯한 하나의 소원을 이룬다.

주님의
주님에 의한 
주님을 위한
나의 계획되고 행하는 삶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나는
포도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하늘에서 주시는
자비와 은혜를 기대하고 바라봅니다.
피곤하고 지칠 수록  고통과 애통함이 더해집니다.
이렇게 무너지지는 않겠지 생각 하지만 내일이 암담하기도 합니다.
구원의 때를 기다립니다.


히브리서 4장 15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2025년 9월 4일 목요일

게임중독 아들을 대하는 불교신문의 답변

부처는 불교의 상상의 산물이고 불상은 금색 입힌 조각일 것이다.  그런데 신을 안다고 하는 신자인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글이 있어  카피하여 가져왔다.  

우리는 한 사람을 바라볼 때 무엇을 바라보고 판단하는가? 이해와 용서와 도움인가? 아니면 행위에 대한 판단과 정죄와 율법의 제시인가?  신자인 나는 무엇이 결여된 것인가?


에수께서는 친히 인간의 몸을 가지고 인간의 연약함을 체험하셨다. 이로서 예수께서 신자를 이해하고 바비를 베풀도 도와 준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4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늘에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 고백을 굳게 지킵시다. 15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우리는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와 어떤 방법(새로운 율법)을 제시하면서  도움을 받기 위해 기도하라고 조언하지는 않는가?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주기 위하여 정의로운 삶을 강조하고 이야기 하면 어떨까?. 사랑과 자비가 결여된 정의와 신념은 위험하다.. 어쩌면 그것은 악이다. 특히나 신자는 왜 이렇게 사랑과 자비가 결여된 정의의 잣대로 바라볼까? 왜냐하면 너무 많은 경우 정죄하고 회개하고 옳바른 삶을 사는일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자는 너무 많은 경우 정의를 가지고 어두움을 만든다. 많은 경우 비판하지만 옳은 삶을 살도록 실질적으로 도와주지는 않은다. 물론 똑바로 살라고 권면하기는 하겠지만.. 그것 뿐...  가령 마음이 아픈자에게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평안하다고 믿음 믿음 믿음, 기도 기도 기도를 강조할 수 있으나 그러나.......차라리 의사 만나서 약을 처방 받아서 나을 수 있다. 거룩해 보이는 권면보다 약물 처방이 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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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 게임에 미쳐 사는 애 때문에 힘들어요

“고1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요즘 게임중독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저희 아들이 그럴 줄은 몰랐어요. 너무 속상합니다. 얘가 중학교 때 어느 날부터인가 피씨방을 다니기 시작하길래 그런 데 꼭 가야 되냐고 했더니, 거기 가야만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고 해서 그냥 이해하는 마음으로 놔두었습니다. 애가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니고, 요즘 애들 문화인가보다 하고 말이죠. 근데 중학교 내내 피씨방에서 사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점차 집에서도 새벽까지 게임을 붙잡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이해해보려고 했어요. 중학교 때까지만 그렇게 놀고 고등학교 올라가면 정신차리겠지 하는 마음에요. 근데 웬걸요. 고등학교에 올라가더니 상황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이번달 제 카드명세서를 봤는데 100만원 정도가 무슨 결제요금으로 찍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깜짝 놀라 애한테 물어보니 자기가 게임에서 뭐 사는 데 카드로 결제를 했다고 그러는 거예요. 정말 앞이 깜깜해지고 지금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남편에게 말해 애를 호되게 혼냈는데, 애가 울면서 하는 말이 자기가 큰 돈을 마음대로 쓴 건 잘못한 거지만, 친구들한테 잘 보이려면 정말 그 아이템이 없으면 안 되는 거라고, 엄마 아빠가 그런 거 하나 못해주냐고 도리어 역정을 내는 거 있죠. 정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애가 게임에 미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A: 안녕하세요.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한다고 보이는 아이 때문에 많이 속상하시군요. 특히 게임 때문에 엄마 카드까지 마음대로 갖다 쓰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보이니 정말 많이 걱정되시겠어요. 아이가 게임중독에 빠졌다고 말씀하시니 저희가 먼저 중독이 무엇인가에 대해 함께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중독은 대체적으로 모종의 심리적 이득을 얻기 위해 특정한 도구를 습관적으로 남용하는 행위로서 정의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중독행위 자체가 아니라, 중독에 빠진 이가 과연 어떠한 심리적 이득을 얻고자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경우 아이가 직접 얘기했듯이, 아이는 게임을 통해 친구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얻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어떤 이득들이 있는 까닭이겠죠.


  친밀한 관계를 얻고자 게임에만 몰입한다는 것은, 역으로 얘기하면 게임 외에는 친밀한 관계를 그 어디에서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있어서 게임이라는 도구는 자신이 바라는 친밀한 관계를 제공할 대상과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것입니다.


  게임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으로 보이는 아이의 모습은, 바로 그만큼이나 친밀한 관계를 필요로 하는 절실한 모습인 것이죠.


  저희가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게임 내에서 통용되는 비싼 아이템을 구매했습니다. 그럼으로써 게임 내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고자 한 것이죠. 즉 아이는 최소 자신이 그 역시도 큰 돈이라고 지각하는 100만 원만큼의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는 100만 원을 게임 내 자신에게 투자함으로써, 자신이 적어도 100만 원만큼은 가치있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많은 액수의 돈이 귀하다고 느끼는 만큼, 아이 자신이 스스로 그렇게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질문자님의 아이는 게임에 미쳐 100만 원을 쓴 바보나 중독자가 아니라, 100만 원을 쓰지 않고는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좀처럼 실감할 수 없었던 슬픈 소년입니다. 그 소년은 친밀한 관계 속에서 자신이 참으로 귀하다는 사실을 얼마나 간절히 확인하고 싶었을까요. 또 그런 것들을 쉽사리 얻지 못해 얼마나 쓸쓸한 마음으로 작은 모니터 속으로 들어가야 했을까요. 질문자님의 관심이 향해야 할 곳은 질문자님의 게임중독자 아이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내가 귀한 것을 누가 좀 알아달라고 목놓아 외치고 있는 바로 그 슬픈 소년일 것입니다. 그 소년의 목소리를 한번 들어보세요. 반드시 듣게 되실 거예요. 그 소년은 우리 모두에게 속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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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겟츠비 문장을 읽어보

In my younger and more vulnerable years my father gave me some advice that I've been turning over in my mind ever since.

"Whenever you feel like criticizing any one," he told me, "just remember that all the people in this world haven't had the advantages that you've had."


제가 더 젊고 연약했던 시절, 아버지는 제게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그 조언은 지금도 제 마음속에 맴돌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을 때마다," 아버지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누렸던 것과 같은 이점을 누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나의 수준에 맞는 믿음을 보이겠지

예수께서 나의 삶의 길을 아십니다. 기쁠 때에 감사하고 즐거울 때에 감사하네. 나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주님 나는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행동하는데 때로운 비겁해 보이기도 한 방법도 사용하지 주님은 주님의 뜻을 따라 나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